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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뚝이 전혜숙, 공천 취소에서 당선까지.
19대 선거 때 금품제공 누명쓰고 공천 박탈, 4년 만에 한 풀어.
 
디지털광진   기사입력  2016/04/15 [18:41]

이번 20대 국회의원선거에서 광진(갑)에서는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승부가 펼쳐졌다. 선거 당일까지 지역사회의 다수 여론은 새누리당 정송학 후보의 당선을 예상했다. 국민의당 임동순 후보가 출마하면서 야권표가 갈릴 것이라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여기에 정송학 후보는 구청장 2회, 국회의원 2회 등 이번이 4번째 출마로 인지도에서 단연 유리한 것으로 보였고 임동순 후보도 이번이 4번째 출마로 지역에 만만치 않은 지지세를 갖고 있었다. 지난 18대 때 비례대표로 여의도에 입성했던 전혜숙 후보는 지역구는 첫 출마였다. 민심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 조심스레 전혜숙 후보의 당선을 점치는 사람도 있었지만 소수에 불과했고 정송학 후보 대세론에 묻혀버렸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수도권에 불어 닥친 거센 정권심판 바람과 4년 전 공천취소의 아픔을 딛고 절치부심 지역을 가꿔온 후보의 노력이 합쳐지며 전혜숙 후보를 재선고지에 올려놓았다.

 

▲ 13일 당선이 확정된 후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지지자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있는 전혜숙 당선자  © 디지털광진

 

 

전혜숙 당선자가 광진에서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10년 지방선거 때부터다. 당시 임동순 지역위원장이 구청장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지역위원장을 사퇴하면서 군자동에 거주하던 전혜숙 의원이 지역위원장 직무대행으로 임명되었으며 지방선거를 진두지휘하면서 본격적인 지역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이에 앞서 전혜숙 의원은 경북 출신이면서도 1996년 새정치국민회의 보건의료 정책특위 부위원장,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통령후보 보건특보 등을 맡아 활동하며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당선을 위해 노력했고 2008년 18대 총선에서 민주당 비례대표로 당선되었다.

 

2010년 지방선거 이후 광진(갑)지역위원장으로 임명된 전혜숙 의원은 아차산둘레길 조성, 광진경찰서 신축 등에 기여하는 등 활발한 지역활동을 전개하며 19대 국회의원선거를 준비했고 2012년 2월 24일 광진(을)추미애 의원과 함께 단수추천을 받았다. 당시에도 서울에 야당바람이 거세게 불어 전혜숙 후보의 당선가능성은 높았다.

 

하지만 3월 15일 중앙당에서 전격적으로 전혜숙 의원의 공천을 취소하면서 전혜숙 의원은 재선 도전의 꿈이 물거품이 되었다. 당시 중앙당에서 공천취소를 무효화하라며 농성까지 벌였지만 공천취소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고, 전 의원은 국회 대신 법원에 등원해 피의자 신분으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당시 전 의원은 공천을 앞두고 당 지역위원회 고문에게 금품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전혜숙 의원은 1년여 간의 기나긴 재판 끝에 1심과 2심에서 거푸 무죄판결을 받았으며, 2013년 6월 27일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가 확정되었다. 무죄확정으로 억울한 누명은 벗었지만 공천취소에 따른 피해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 2013년 6월 27일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전혜숙 의원을 김유정 전 의원이 격려하고 있다 ©디지털광진

 

이후 전혜숙 의원은 지역에서 드러내놓고 나서서 활동 하는 대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공감하며 활동 폭을 넓혀나갔다. 하지만 광진(갑)의 국회의원인 김한길 의원은 당대표까지 역임하고 20대 총선출마를 기정사실화한 상태여서 전 의원이 김한길 의원을 제치고 공천을 받기는 다소 버거워보였다. 이러한 상항에서 전혜숙 의원은 경선에 기대를 걸고 밑바닥을 다지며 때를 기다렸다.

 

그러던 차에 지난 1월 3일 김한길 의원이 탈당한 것은 전혜숙 의원에게 결과적으로 행운이 되었다. 가장 강력한 공천경쟁자가 당을 나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한길 의원의 탈당은 전혜숙 의원이 속한 더불어민주당에는 당이 깨지는 큰 악재이기도 했다. 또한 김한길 의원이 출마할 경우 3자구도가 형성돼 당선이 쉽지 않은 조건이 될 수도 있었다.

 

이후 탈당한 김한길 의원이 국민의당에서 야권연대를 위해 노력하는 것도 전혜숙 의원 입장에서는 불안한 요소였다. 야권연대가 이루어질 경우 광진(갑)선거구는 국민의당 몫이 될 가능성이 높았고 실제 더불어민주당은 야권연대가 무산된 이후에도 김한길 의원의 복당에 대비하는 듯 광진(갑)선거구 공천을 미뤘다. 김한길 의원의 복당설까지 나돌자 전혜숙 의원은 ‘복당하려면 경선하자’며 배수의진을 치고 공세를 펼치기도 했다.

 

결국 더불어민주당은 3월 14일 전혜숙 의원을 단수 공천했고 김한길 의원은 3월 15일 총선불출마를 선언했다. 공교롭게도 3월 15일은 4년 전 전혜숙 의원의 공천이 취소되고 그 자리에 김한길 의원이 공천을 받은 날이었다.

 

공천을 받았지만 어려움은 계속되었다. 국민의당 임동순 후보가 후보등록 전날인 23일 공천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지지층이 겹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1여 2야 구도는 불리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어려움은 있었지만 결과는 전혜숙 후보 당선, 임동순 후보 선전으로 막을 내렸다. 공천취소에서부터 이어진 여러 어려움에도 주저앉지 않고 미래를 준비해온 전혜숙 의원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전혜숙 후보가 선거운동을 하는 동안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두 차례나 광진갑을 찾아 전혜숙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었고, 강진에서 칩거 중인 손학규 전 대표도 측근을 보내 메시지를 통해 전 후보를 응원했다. 여기에 탈당하지 않고 더불어민주당을 지킨 시의원, 구의원들과 동협의회장들, 그리고 열성지지자들은 전혜숙 의원의 당선에 큰 힘이 되었다.

 

당선이 사실상 확정된 후 전혜숙 후보는 가장 먼저 “4년 동안 어렵고 힘들 때 친구가 되어준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가슴 아픈 시간이었지만 진정한 친구를 많이 만난 시간이었다.“며 감회를 밝혔다.

 

어렵고 힘든 지난 4년을 보낸 끝에 재선에 성공한 전혜숙 의원이 당선소감에서 밝힌 대로 ‘아파도 걱정 없는 나라, 어려운 분들이 소외되지 않는 나라, 젊은이들이 꿈을 이루는 나라’를 만드는데 앞장서며 활발한 정치를 펼쳐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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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4/15 [18:41]   ⓒ 디지털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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