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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라지면 어디로 갈까?
이자벨 미뇨스 마르띵스 글. 마달레나 마또주 그림/ 송필한 옮김 / 북뱅크/ 어린이책시민연대광진지회 박경례
 
디지털광진   기사입력  2020/01/15 [09:02]

책표지를 넘기면 검은 선이 자신의 존재를 커다랗게 드러내며 아래쪽에서 시작해 오른쪽 위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다시 한 장을 넘기면 처음의 넓고 큰 선은 아니지만 검은 선은 굵은 궤적을 그리며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다. 하얀 공간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로지르며, 이 장에서 다음 장으로, 부드럽게 휘기도 하고, 날카롭게 꺾이거나 혹은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여러 갈래로 나뉘기도 하고 여러 색깔로 물들기도 하지만 본래의 검은 색을 다시 찾으며 이 선은 계속 된다. 그리고 결국 끝나는 듯싶던 그 선. 그러나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전 다시 시작되고 어딘가를 향해 계속 나아간다.

 

▲ 우리가 사라지면 어디로 갈까?     © 디지털광진

모든 장에 걸쳐서 이어지고 있는 검은 선은 무엇일까? ‘우리가 사라지면 어디로 갈까라는 책 제목에서 힌트를 얻어 보려 했지만 사라짐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하는 책 제목과는 다르게 검은 선은 사라지지 않는다.

 

대체로 우리는 아주 멀리가지 않아요. 가까운 모퉁이에 있을 뿐이죠.’라며 말을 건네기 시작한다. 사라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모퉁이 혹은 소파 밑 같은 곳에 있기 때문에 사라지는 것이라고 한다.

 

사라지면...’이라는 단어에서 죽음을 떠올리고, 묵직한 주제에 마음을 다잡고 책장을 넘겼던 우리에게 작가는 어이없이 소파 밑에 들어가 감쪽같이 사라진 양말 한 짝을 들이밀며 사라짐이란 이런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물웅덩이, 소리, 모래의 사라짐에 대해 읽다보면 어느덧 우리가 각오했던 애통함, 안타까움의 사라짐은 사라져 버린다. 이 세상 모두에게 오는 자연스러움이며 보이지 않아서 사라졌다고 생각할 뿐이지 소파 밑의 양말처럼 우리 가까이에 있을 것이라고도 한다.

 

정말 그런 것일까? 우리는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 그저 두려운 일이고, 그러기에 고대부터 인간은 신을 찾아 마음의 평안을 찾으려했고 권력자는 영생을 위해 혹은 젊음을 위해 그들의 힘을 휘두르기도 했다. 의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은 곧 100세를 넘을 것 같다. 평균적으로 한 세기를 살 수 있음에도 우리의 삶의 끝은 여전히 두려움이고,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은 아픔이라 한없이 미루고 싶다.

 

그러나 바위가, 태양이, 물웅덩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모양과 형태를 바꾸고 다른 위치에서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의 사라짐도 그렇다면 사라짐은 더 이상 마음 아픈 일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죽음이후에도 다른 모습으로 다른 곳 혹은 같은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계속 같이 하고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이제 사라짐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사라지는 것을 슬퍼하지 말아요.

대체로 우리는 아주 멀리가지 않아요. 가까운 모퉁이에 있을 뿐이죠..(본문중)

 

사라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모든 장에 있었던 검은 선은 우리의 삶이 아닐까싶다. 휘어지고 꺾이고 갈라지고 변하기도 하지만 모든 방황을 마치고 결국은 자신으로 돌아오는 우리의 삶 말이다. 동전의 양면과 같은 삶과 죽음을 글과 그림으로 나누어 표현한 작가의 깊은 성찰이 다시금 느껴진다. 이 책의 전체에 흐르는 사라짐, 죽음에 대한 작가의 고민에 여러분도 같이 해보기를 권한다. 누군가 알아주기에 생기는 사라짐, 남겨진 이에게 주어지는 문제, 모두가 가는 그 곳. 죽음을 사라진 양말에 비유했던 발상의 전환처럼 죽음에 대한 조금은 다른 방식의 치유가 있을 것이다.

 

 글을 써주신 박경례 님은 어린이책시민연대 광진지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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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1/15 [09:02]   ⓒ 디지털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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