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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건국과정의 시공적 검토’
광진문화원 발간『백제건국론』 중 향토사학자 김민수 선생 논문
 
디지털광진
 

 광진문화원은 백제사에 저명한 학자들을 모시고 백제건국론을 펴냈다. 백제사의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는 계명대학교 노중국 명예교수, 백제사의 독보적인 학설로써 매스컴에 잘 알려진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이도학 교수, 백제사의 신예인 한성백제박물관 이장웅 박사, 그리고 광진구의 향토사학자 김민수 선생이 함께 집필했다.  

 

▲ 향토사학자 김민수 선생이 아차산선성 망대지를 둘러 보고 있다    ©디지털광진

 

문제는 건국과정에서 소외되었던 한강 북쪽에서 처음 백제를 세웠던 하북위례성의 위치가 어디인가이다. 각기 북한산 일대, 종로구 세검정 일대, 광진구 중랑천 일대라고 주장하고 있다.

 

디지털광진에서는 김민수 선생의 백제 건국과정의 시공적 검토를 제재하였다. 김민수 선생은 백제를 선·후로 나누었다. 앞의 백제는 고조선 계통의 백제(伯濟)로서 위만조선의 멸망에서 비롯한 유입집단이라고 하였다. 다음의 백제는 만주에서 멸망한 부여의 유민집단의 백제(百濟) 라고 하였다.

 

  두 백제(伯濟;百濟) 사이에 너무나 긴 간격이 있었다. 바로 이 긴 간격에서 일본서기가 줄곧 말하고 있는 아리수(한강)의 왕()이라고 하는 가야가 있었음을 주장했다. 이러한 한강의 가야는 중국 삼국지(··)의 위나라에 쫓겨서 남한강 유역의 충주에서 다시 재기한 사실을 밝혔다. 충주가 광개토왕릉비의 임나가라이며 가야의 우륵이 가야금을 탔다는 탐금대토성이 있는 곳이다.

 

  이러한 논고로 생소한 것으로써 학계의 반응이 어떨는지 궁금하다. 김민수 선생의 논문 전체를 게재하였다.

 

논문백제 건국과정의 시공적 검토보러가기

 


 
기사입력: 2020/02/10 [17:32]  최종편집: ⓒ 디지털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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