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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비낭고개의 며느리 바위 전설
워커힐 고개에 얽힌 어느 효부의 이야기
 
홍진기   기사입력  2002/03/13 [19:14]
일명 아차산 박사로 불리우는 광진구의 대표적인 향토사학자인 김민수 선생은 그 동안 아차산과 광진구에 얽힌 전설들을 총 정리하여 「디지털광진」에 보내왔다.

「디지털광진」에서는 이 전설을 매주 1편씩 4차례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먼저 지금의 워커힐 고개에 얽힌 효부의 이야기를 다룬 비낭고개의 전설을 알아본다.

비낭고개의 며느리 바위 전설.


광나루 동쪽 벌판을 벌말 이라고 불렀다.
벌말은 벌판마을의 줄임말이다. 이곳에는 맑은 물이 고여있는 장자못이 있었다.
물고기들은 떼를 지어 몰려다니고 뒤쫓는 철새들은 오색의 깃털을 퍼득거리는 참으로 아름다운 작은 호수였다. 그래서 이곳에 살고 있는 부자노인을 장자노인이라고 불렀다.

장자노인은 힘이 항우장사를 빼어 닮아서 아차산을 뽑을 기세였다. 얼마나 부지런하였던지 올빼미처럼 밤을 새면서 물 코를 트이고 아침을 먹고서야 아침잠을 청하는 것이 버릇처럼 되어 있었다.

어느 날 밤새 논일을 하고서 잠을 청하려 하고 있는데 공염불 소리가 들려왔다. 선잠에서 깨어난 장자노인은 잠에서 깨어나 들어보니 자기집 대문 앞에서 스님이 시주공양을 청하는 염불 소리였다. 장자노인은 벌떡 일어나 대문을 열고 나섰다.
이놈의 중놈아. 네 놈도 일해서 빌어먹지 웬 공밥을 먹으려고 아침부터 소란이냐?하고 버럭 역성을 내었다.

남루한 노승은 염불을 멈추고 허리를 굽혀 절을 하면서
어르신네, 소승은 아차산 짚시기 절에 있는 중이온데, 워낙 흉년이라서 시주가 없는지라 삼가 염치를 불구하고 시주를 청합니다. 먹다남은 찌꺼기라도 좋으니 부처님 전에 공양 시주를 청하옵니다.하고 공손히 말하였다.

장자노인은 자린고비가 저리 가라는 구두쇠요, 심술은 놀부 다음가라면 서러울 사람으로 잘 알려진 터였다. 장자노인은 불끈 심술을 세우더니 집채가 울리도록 소리쳤다.
좋다. 먹다 남은 찌꺼기가 있으니 시주하마.하고 곧 우리로 들어가더니 쇠똥 한 바가지를 스님의 바랑에 집어넣고 돌아가 버렸다.

시아버지의 호통 소리에 따라 나왔던 젊은 며느리는 얼른 스님의 바랑을 비워 깨끗이 씻고는 새 자루에 쌀 한 되를 넣어서 스님에게 드렸다.
스님은 찬찬히 며느리를 들여다 보다가 입을 열었다.
나를 따라 오너라.

스님의 말씀이 너무나 엄숙하여 젊은 며느리는 아무 말도 못하고 따라 나섰다. 스님은 잠시 후 장자못에 이르자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젊은 며느리를 향하여 섰다.
비낭고개를 넘어 가거라. 고개를 넘기 전에는 절대로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 하고는 물안개 속으로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비낭고개는 비탈 낭떠러지고개의 줄인 말로써 지금의 워커힐 고개를 가리키는 것이다. 젊은 며느리는 경이와 신비로움에 몸을 떨며 비낭고개를 향하여 내달음 쳤다.


며느리 바위가 있었던 비낭고개. 지금의 워커힐 고개이다.



비낭고개 마루턱에 올라서자 갑자기 장대같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젊은 며느리는 집에서 바삐 나온 터라 장독을 열고 닫지 않은 것이 문득 생각이 났다. 젊은 며느리가 무심코 자기 집을 돌아보는 순간 , 섬뜩거리는 번개가 한강물을 가르더니 아차산이 울려나가는 벼락이 내리쳤다. 젊은 며느리의 몸에서 김처럼 연기가 오르더니 이내 돌로 굳어져 버렸다.

신기하고 괴이한 사건이 일어난 다음부터 마을 사람들은 비낭고개에 서낭당을 세우고 돌로 굳어진 며느리상을 모셨다. 그리고 비낭고개 아래에 살고있는 광나루 사람들은 음력 10월 초사흘 안에 들어있는 길일을 택하여 제사를 드렸다. 이후로부터 광나루에는 착한며느리(효부)들이 사는 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비낭고개의 며느리상은 지금까지도 워커힐 고개길에 자그마한 신당으로 차려져 있으며 안에는 그 후에 만들어 놓은 며느리 반신상이 놓여져 있다. 원래 광진구와 구리시의 경계부근에 전설에 근거하여 있던 신당은, 이후 도로가 확장되면서 지금의 구리시 쪽으로 약간 옮겨졌다.


김민수 선생은?.




김민수 선생은 1990 「아차산성의 재발견과 간고]를 시작으로 지난 10 여 년 간 한강과 아차산을 중심으로 고대 삼국시대 역사를 연구하여 활발한 논술활동을 펼쳐온 광진구의 대표적인 향토사학자로, 2000년 향토사 연구논문 대상인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는 등 그 연구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발표논문.

『阿且山城의 再發見과 簡考』1990

『百濟의 慰禮城과 北漢山城』1993

『漢江流域에서의 三國史의 諸問題』1994

『漢水의 槪念과 高句麗 南平壤의 考察』1995

『百濟 建國過程의 諸問題』1996

『羅唐聯合軍의 百濟征伐 루트의 再檢討』1997

『古朝鮮의 始原과 變遷에 관한 硏究』1998

『峨嵯山에서의 古代史의 諸問題』2000

『漢四郡 初期 彊域에 관한 硏究』2001

수상경력

1988. 7. 올림픽 봉사상 수상 범민족 올림픽추진위원회
1994. 10. 향토사료연구논문 최우수상 수상 문화제육부장관상
1995. 10. 향토사료연구논문 우수상 수상 문화예술진흥원장상
1999. 6. 사료조사 공로상 국사편찬위원장상
2000. 12. 향토사연구논문 대상 수상 국무총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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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3/13 [19:14]   ⓒ 디지털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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