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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쌀 바위 전설
아차산 대성암의 쌀바위에 얽힌 옛이야기.
 
향토사학자 김민수   기사입력  2004/10/19 [13:27]

 아차산에는 넓게 뚫린 자연 동굴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한강이 훤히 보이고, 그 주변의 경치도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먼 옛날부터 훌륭한 스님들이 오셔서 불도(佛道)를 닦으시고 가곤 하였습니다. 자연 그대로 있는 동굴의 절이므로 그냥 범굴사(梵屈寺)라고 불렀습니다. 이 굴의 천장에는 작고 큰 구멍 하여 두 개의 구멍이 나란히 뚫려 있습니다. 옛날 옛적에 가난하고 착한 사람이 정성껏 기도를 하였더니, 작은 구멍에서 하얀 쌀이 쏟아져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욕심 많은 부자가 이런 이야기를 듣고 그 옆에 크게 구멍을 뚫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쌀은커녕 벌떼들이 몰려들어 욕심쟁이 부자를 마구 쏘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욕심쟁이 부자는 얼굴이 흉측하게 부어 오르더니 얼마 안 가서 죽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다시 꾸며 보았습니다.

▲대성암에 있는 종각 (사진제공-이창)    © 홍진기

아차산 기슭에 사는 황부자는 아차산의 걸승을 문전박대하고
 아차산 기슭에는 황골(구의 2동 일대)이라고 하는 작은 마을이 있었습니다. 아차산에서 흘러오는 냇물로 농사를 짓고 사는 마을이었습니다. 이러한 황골에 황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황골의 대부분의 논과 밭은 황부자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황골에 모여 사는 사람들은 거의 황부자의 논과 밭을 빌려서 붙여 먹고사는 소작농들이었습니다. 그만 하면 편안히 살 수 있는데도 황부자는 명절 이외에는 쉬는 날이 없었습니다. 워낙 욕심이 많아서 재산 모으는 것이 즐거움의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러는 동네 사람들과 다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황부자의 억지에 당해낼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황골은 황부자의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벼이삭이 익어 가는 초가을 날이었습니다. 바람에 넘실거리는 벼이삭들은 황금 물결이 이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날, 허름한 가사를 걸치고 바랑을 짊어진 늙은 스님이 황골에 들어섰습니다. 그리고는 황골에서는 단 한 채 밖에 없는 황부자의 기와집 대문 앞에서 멈췄습니다. 늙은 스님은 목탁을 꺼내 치면서 염불을 외웠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염불을 외웠는데도 황부자집에서는 인기척이 없었습니다. 그럴수록 염불 소리는 점점 커져 갔습니다. 그때 대문이 삐거덕거리면서 열렸습니다. 눈썹을 치켜세운 황부자는 소매까지 걷어붙이고 대문을 넘어섰습니다. 늙은 스님은 황부자를 향하여 공손히 절을 하였습니다.

 "저는 범굴사에 머무는 걸승(자리를 낮추어 거지 중이라고 한 것)입니다. 부처님 전에 공양   을 올린 시주를 부탁드립니다."하고는 다시 절을 하였습니다. 황부자는 허리를 펴는 늙은  스님을 향하여 소리쳤습니다.
 "오냐 좋다. 조금만 기다리거라"
그리고는 휑하니 마당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곧바로 돌아온 황부자의 손에는 쥐꼬리가 들려 있었습니다. 거기에 쥐 세 마리가 대롱거리며 매달려 있었습니다.

 "일 안하고 빌어먹는 중놈아, 네 놈은 애써 농사지은 쌀을 파먹는 쥐새끼와 다를 게 무어    냐. 잘 왔다. 어제 밤에 잡은 쥐다. 옛다 이거나 가져가거라"
 쥐들이 늙은 스님의 발 밑에 내동댕이쳐졌습니다. 다시 황부자집 대문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닫혔습니다. 늙은 스님은 천천히 허리를 굽혀 쥐꼬리들을 하나 하나 모아 잡았습니다. 그리고서는 황부자 집의 앞에 서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 밑을 나뭇가지로 헤쳐서 파고는 세 마리의 쥐를 묻었습니다. 그리고서 가사를 고쳐 입고는 물도랑 길을 따라 어디론가 가버렸습니다.

보리쌀을 시주한 가난한 농부에게 걸승은 아차산 바위굴에서 기도할 것을 권한다.
 황골의 동구 밖에는 외딴 오막살이 한 채가 있었습니다. 홀로 되신 어머니를 모시고 가족끼리 오순도순 살아가는 집이었습니다. 여기 사는 젊은 부부는 부지런히 일하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나 살림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황부자에게서 빌려서 붙여 먹는 논과 밭의 소작료를 내고 나면, 보리쌀과 같은 잡곡 정도가 남을 따름이었습니다. 그래서 논두렁이나 텃밭도 일구어서 모자란 식량을 보태었습니다. 그러나 자라나는 아이들이 배불리 먹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늙으신 어머니는 점점 기력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젊은 부부는 없는 살림에도 약 방문을 써 와서 약을 다려 드렸지만, 어머니의 병세는 회복되는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소원은 어머니가 나으셔서 전처럼 가족들이 웃고 사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가을 햇살이 울타리도 없는 오막살이의 마당을 가득 채웠습니다. 젊은이는 골방에 누워 계신 어머니에게 햇볕을 쬐여 드릴 요량으로 마당가의 툇마루로 모시고 나왔습니다. 여의고 창백한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는 것을 본 젊은이는 기뻤습니다. 어머니의 어깨를 주물러드리면서 아이들이 커 가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드렸습니다. 가난한 주인을 마다하지 않고 같이 사는 삽살개가 마당에서 뒹굴면서 재롱을 부리는 그런 한가한 한나절이었습니다.

 이때, 허름한 가사를 걸친 늙은 스님이 젊은 농부의 오막살이로 들어섰습니다. 황부자의 집에 들렸었던 걸승이었습니다. 스님은 목탁을 치면서 염불을 외웠습니다. 괴이한 스님을 본 삽살개도 물끄러미 쳐다만 볼 뿐 짖지를 않았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염불을 왼 스님은 부처님 전에 올릴 시주를 부탁하였습니다. 젊은 농부는 툇마루에서 내려섰습니다.
  "스님, 보시다시피 우리는 그럭저럭 끼니를 이어가는 가난한 농부입니다. 드릴 쌀은 없습니다. 보리쌀이라도 좋으시다면 한 되박 드리겠습니다."

 스님은 지긋이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젊은 농부는 쌀독의 바닥을 긁어모아서 한 되박의 보리쌀을 스님의 바랑에 조심스럽게 담아드렸습니다. 추수 때까지 먹을 요량으로 겉보리 한 섬을 따로 남겨 두었으므로 시주를 하고서도 되려 마음은 홀가분하였습니다. 바랑을 추스린 스님은 툇마루 기둥에 기대어 앉아 있는 어머니를 보시고 입을 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아프신가 봅니다."
 "예. 기력이 약해지셨는지, 거동을 못한지 꽤 오래됐습니다."
젊은 농부의 대답을 들은 스님은 한참을 그의 어머니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서는 젊은 농부에게 말했습니다.
 "아차산에 바위굴이 있소. 한강이 훤히 보이는 곳이요. 내가 몸과 마음을 닦던 곳이요. 내가 떠날 터이니, 짬이 나는 대로 거기에 가서 기도를 드리시오"

 아차산에는 바위굴이 있었습니다. 옛날부터 훌륭한 스님들이 오셔서 기도를 드리는 도량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곳에 가까이 가기를 꺼렸습니다. 신령스러운 곳이기 때문에 잘못 발을 들여놓았다가는 동티나는 일이 생길까 두려워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그러한 곳을 가서 기도하라고 합니다. 얼마나 근엄하게 말씀하시는지, 거절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스님의 말씀 따르겠습니다."

 젊은 농부는 돌아서는 스님을 향하여 연신 꾸벅꾸벅 절을 하였습니다.
 그 날부터 젊은 농부는 깊은 밤에 아차산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바위굴에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저 어머니께서 기력을 회복하시기를 빌고 또 빌었습니다. 다시 밤에 내려왔으므로 젊은 농부가 바위굴에서 기도를 드리는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래서인지 젊은 농부의 어머니는 조금씩 기력을 회복하여 갔습니다. 처음에는 앉은걸음으로 마루에 나오셨습니다. 이제는 문고리와 문기둥을 잡으시고 걸어서 나오셨습니다. 너무나 기쁜 젊은 농부는 거르는 날이 없이 밤마다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를 올리던 농부에게 아차산 바위굴 천장에서 쌀이 쏟아지고.

▲대성암에 있는 쌀바위 (사진제공-이창)    © 홍진기

추운 겨울이 가고 새 봄이 왔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이 날을 기려 입춘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모아 두었던 식량을 겨울 내내 먹어버렸으므로 걱정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 날도 젊은 농부는 여느 때처럼 깊은 밤에 아차산에 올랐습니다. 먼저 어머니의 건강을 기원하였습니다. 곁들여서 새 봄부터는 농사일이 잘 되어서 우리 아이들이 배고는 일이 없도록 하여 달라고 빌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빌자, 굴속은 따듯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빌고 빌던 젊은 농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만 깜박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꿈을 꿨습니다. 꿈속에서도 젊은 농부는 바위굴에 있었습니다. 또한 기도를 드리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잠든 젊은 농부의 위로 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내린 눈은 금새 젊은 농부를 덮어버렸습니다. 꿈속에서도 눈 속에 묻힌 자기가 너무나 포근해서 일어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때 빗자루를 든 늙은 스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작년의 그 걸승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젊은 농부를 깨웠습니다. 꿈속에서 일어난 젊은 농부에게 쌓인 눈을 쓸어모으라고 하였습니다. 빗자루를 받아든 젊은 농부는 굴 앞에 쌓인 눈들을 쓸어모았습니다. 그런데 모인 눈들이 꿈틀꿈틀 살아서 움직였습니다. 가만히 보았더니 움직이는 눈들은 하얀 쌀이었습니다. 너무나 놀란 젊은 농부는 정말로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굴속은 캄캄한 밤이었습니다. 젊은 농부는 꿈속에서 쌀들이 쌓였던 바위 바닥을 쓰다듬었습니다. 그저 딱딱한 바위였습니다. 그때, 위에서 쏴하고 무언가 쏟아져 내리는 소리가 들렀습니다. 금새 젊은 농부의 손등 위로 하얀 쌀들이 소복이 쌓였습니다. 놀란 젊은 농부가 위를 쳐다보는 순간, 바위 굴 천장에서 쏟아지던 쌀들이 멈춰 버렸습니다. 젊은 농부는 손바닥으로 쏟아져 내린 쌀들을 모았습니다. 너무나 신기하고 두려워서 한 톨의 쌀도 남김 없이 모두 모았습니다. 그리고 두루마기를 벗어서 모은 쌀들을 담아 어깨에 매었습니다. 젊은 농부는 쌀이 쏟아진 바위 구멍을 향하여 연거푸 절을 하고서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도 꼭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예 젊은 농부는 쌀자루를 가지고 가서 쌀을 담아 왔습니다. 젊은 농부의 집은 즐거운 나날이 계속되었습니다. 더러는 쌀을 팔아서 어머니의 보약도 지어 드렸습니다. 남는 돈으로 옷감을 사서 아이들의 옷도 만들어줬습니다. 간혹 지나다니는 생선장수에게 쌀을 주고 소금에 절인 고등어자반도 바꾸어 먹었습니다. 그래서 저녁 식사를 맛있고 배부르게 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젊은 농부의 오막살이는 궁궐보다도 더 행복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황부자는 들녘을 둘러보려고 대문을 나섰습니다. 어느 누구가 농사 준비를 게을리 하고 있는지, 살피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트집이 잡히면 아예 소작 주는 땅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황골의 소작인들은 뒷짐을 지고 거니는 이때의 황부자를 가장 두려워하였습니다. 황골을 거의 둘러본 황부자는 동구 밖까지 나섰습니다. 동구 밖에는 젊은 농부의 오막살이만이 덩그러니 홀로 있었습니다. 오막살이에 사는 젊은 농부는 부지런하고 착해서 황부자의 속을 썩히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오막살이 굴뚝에서 모락모락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조용히 숨을 죽이고 들어보니, 간간이 웃음소리까지 들려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황부자는 의아해 하였습니다. 모두가 춘궁기라 먹을 것이 변변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찢어지게 가난한 젊은 농부의 오막살이에서만 유독 연기가 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웃음소리까지 곁들여서 말입니다. 황부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젊은 농부의 오막살이까지 다가갔습니다. 생선을 굽는 냄새가 물씬 풍겨서 황부자도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때 마침 달려온 삽살개가 황부자의 주위를 돌면서 짖어대기 시작하였습니다. 삽살개의 짖는 소리에 젊은 농부의 식구들은 툇마루까지 나왔습니다. 황부자가 온 것을 안 젊은 농부는 마당으로 내려가서 인사를 하였습니다.
 "어르신 어쩐 일이십니까. 저희 집까지 다 오시고…"

 젊은 농부는 다음 말을 다 잇지 못하였습니다. 황부자가 툇마루에 놓여 있는 쌀가마로 발걸음을 옮겼기 때문입니다. 쌀가마를 뒤척이던 황부자는 돌아섰습니다.
  "웬 쌀인가"
  "예. 범굴사에 계신 스님이 주셨습니다."
  "스님이 주었다고, 웬 일로"
  "………"
 다그치는 황부자의 질문에 젊은 농부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음, 절에 가서 무슨 일을 해 주었는지 모르지만, 귀한 쌀을 얻어 왔군."

황부자는 다시 쌀가마를 뒤척이더니 아예 쌀 한 줌을 집었습니다. 손바닥을 펴고 거기에 놓인 쌀들을 보면서 말을 이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쌀은 생전 처음 본다. 중놈들은 이런 좋은 쌀로 배부르게 먹으니 오동통 살    만 찌지…"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젊은 농부를 향하여 말했습니다.
 "여보게 올 해 농사를 지으면 소작료를 내어야 될게 아닌가. 그때 들어올 소작료 중에서    이 쌀 한 가마를 먼저 받아 가야겠네. 싸전에 쌀 백 가마를 보내야 하는데, 한 가마가 모자   라서 말일세, 아흔 아홉 가마야, 자네 쌀 한 가마를 언치면 딱 백 가마가 되어서 아구가 맞거든"

 올 해 짓지도 않은 농사의 소작료를 먼저 가져가겠다는 얼토당토않은 억지였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약한 젊은 농부는 황부자의 비위를 거슬릴 수가 없었습니다. 헛간에서 지게를 내와서 거기에 쌀가마를 올려놓았습니다. 지게를 진 젊은 농부는 황부자 집을 향하여 꾸벅구벅 걸어갔습니다. 졸지에 쌀가마를 빼앗긴 젊은 농부의 아이들이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다만 삽살개만이 뒤쳐져서 따라 가는 황부자를 쫓아가면서까지 짖어댔습니다. 황부자는 손과 발을 허우적거리면서 삽살개를 쫓았습니다. 그렇게 하여 하루가 또 지나갔습니다.

 며칠이 지난 뒤였습니다. 황부자는 황골의 들녘을 거닐었습니다. 그리고서 다시 젊은 농부의 오막살이집에 들렸습니다. 황부자는 자기의 눈을 의심하였습니다. 오막살이의 툇마루 끝자락에는 지난번과 꼭 같이 쌀가마가 놓여져 있었습니다. 삽살개가 짖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황부자는 쌀가마를 뒤척였습니다. 분명히 전번과 똑같은 쌀이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개 짖는 소리를 듣고 나온 젊은 농부를 향하여 황부자는 다그치듯이 물었습니다.
 "웬 쌀이 또 있는가"
 "예, 절에서 내려온 것입니다."
 "아차산에 범굴사 말이지, 헌데 거긴 절집이 없지 않은가?. 굴속이라면서…, 그런데 웬 쌀이 그렇게 많은가. 떡을 찧을 쌀인가"
 "………"
 대답을 못하는 젊은 농부가 무척이나 수상쩍었습니다. 그렇다고 또다시 쌀가마를 빼앗아 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속이 타는 황부자는 그 길로 아차산의 범굴사로 갔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된 황부자는 쌀구멍을 새로 뚫다 벌에 쏘여 죽는다.
범굴사는 말 그대로 그냥 굴이었습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다듬은 것처럼 굴속의 바위들이 빛이 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세간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쌀독도 없었습니다. 황부자는 젊은 농부에게 속은 것을 바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쌀가마가 어디서 나왔는지는 생각할 수록 아리송하였습니다. 그래서 젊은 농부가 다니는 곳을 몰래 살펴보았습니다. 젊은 농부는 낮에는 일만 하였습니다. 간혹 장날에는 쌀가마를 지게에 지고 가서 두모포에 내다 팔았습니다. 돌아올 때에는 쌀가마보다 많은 것들을 사서 지고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참으로 해괴한 일이었습니다. 다시 자세히 살펴본 황부자는 젊은 농부가 깊은 밤에 아차산에 오르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황부자는 캄캄한 그믐밤을 택하여 젊은 농부의 뒤를 쫓아갔습니다. 젊은 농부는 여느 때처럼 정성을 들여 기도를 하였습니다. 한참 후에 쏴 하고 바위 굴 천장에서 무언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젊은 농부의 앞에 쌓인 것은 모두 하얀 쌀이었습니다. 대략 한 말은 넘을 성 싶었습니다. 젊은 농부는 조심조심 쌀을 쓸어모았습니다. 쌀자루에 담고는 그것을 등에 걸어 메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번 쌀이 쏟아져 내린 바위 구멍을 향하여 절을 하고서는 내려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 날도 그랬습니다. 황부자의 마음은 조급해졌습니다.
  '저렇게 야금야금 빼 먹으면 남은 쌀이 점점 작아질 것이다. 결단을 내려야겠다.'
하고는 굳게 마음을 다졌습니다.

 황부자는 이른 새벽에 일어났습니다. 집에 있는 늙은 머슴에게 단단히 일렀습니다.
  "나루건 움집이건 가서 짐꾼들을 모아라. 아차산에서 쌀 한 가마를 지고 내려오면 쌀 한  말을 준다고 해라. 범굴사라고는 절대 알리지 말고 네가 직접 데리고 와라. 나는 먼저 가서 쌀을 모아두겠다."
  "아니 그 높은 산에 쌀이 있다니요"
어안이 벙벙해서 다시 묻는 늙은 머슴에게 황부자는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너는 시키는 대로만 해라. 밥값도 애껴야겠으니, 점심도 먹고들 오라고 해라"
  "………"
 
 늙은 머슴을 뒤로 한 황부자는 직접 지게를 지었습니다. 지게에 얹힌 바소쿠리에는 갖가지 연장과 새끼줄도 한 타래가 있었습니다. 범굴사에 도착한 황부자는 쌀이 쏟아져 내리는 구멍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생각을 다졌습니다.
  '저 구멍은 그래도 조금씩 쌀이 나오는 곳이니 그대로 두자. 옆에 크게 구멍을 뜷어서 한꺼번에 모든 쌀을 쏟아지게 하여야겠다.'
 황부자는 단단한 나무들을 잘라서 엮어 메고는 그 위에 올라섰습니다. 그리고 이내 범굴사의 천장 바위를 뚫기 시작했습니다. 황부자의 망치 소리가 굴속에서 울렸습니다. 그 소리의 파장은 종소리처럼 아차산의 숲 속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굴속의 천장에 구멍을 뚫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황부자는 쏟아질 하얀 쌀들이 굴속을 가득 채울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기뻐서 힘든 줄도 몰랐습니다. 그렇게 한나절을 뚫자, 천장에는 큰 구멍이 생겨났습니다. 그 구멍 깊이 끼어 있는 돌 한 떼기를, 떼어내면 바위 속 깊이 있는 빈 공간과 연결될 것 같았습니다. 황부자는 있는 힘을 다하여 한 떼기의 돌을 떼어내었습니다. 순간, 하얀 뜨물이 황부자의 얼굴을 덮쳤습니다. 다음에는 쌀이 쏟아질 것으로 생각한 황부자가 두 손을 펴 벌렸습니다. 그러나 다시 쌀뜨물만 듬뿍 쏟아져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황부자는 멍하니 그렇게 두 손을 벌리고 서 있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말벌들이 웽웽거리며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몰려든 말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뜨물을 뒤집어 쓴 황부자를 향하여 벌침을 쏘기 시작하였습니다. 황부자는 엮은 나무 위에서 손을 휘저으며 말벌들의 공격을 막았지마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습니다. 그만 엮은 나무를 헛디디어서 굴 속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떨어진 황부자에게 말벌들이 달려들었지마는 황부자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늙은 머슴이 짐꾼들을 데리고 범굴사에 도착한 것을 한참이 지나고 나서였습니다. 그들은 쓰러진 황부자를 번갈아 가면서 지고 내려왔습니다. 할 수 있는 모든 간병을 다하였지마는 황부자는 다시 일어나지 못하였습니다. 흉측하게 붓고 온 몸에 진물이 나더니, 그대로 죽고 말았습니다.

 황부자가 죽고 난 다음부터 그 집 앞의 큰 느티나무의 잎도 누렇게 말라갔습니다. 말라죽은 느티나무 주위에는 밤마다 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몰려든 쥐들은 황부자집으로 옮겨갔습니다. 황부자집은 쥐들에게 시달림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황부자집은 이내 폐가가 되어 버렸습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이곳에는 세 마리의 삼왕(三王) 쥐가 산다고 하였습니다. 삼왕 쥐는 곳간 임금쥐, 부엌 임금쥐, 뒤간 임금쥐라고 합니다.

 젊은 농부도 사정이 나빠졌다고 합니다. 그 후로는 아무리 기도를 하여도 범굴사의 천장에서 쌀이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부정을 탓 던 것 같습니다. 또한 황골의 땅 주인들이 여러 번 바뀌면서 마음대로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젊은 농부의 가족은 큰절에 가서 일을 하여 주고 사는 절 살림을 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대성암(전에 범굴사)의 뒤편 바위 굴 천장에는 두 개의 구멍이 있습니다. 이 구멍에 쌀 나온 구멍이라고 팻말을 붙여놓은 것은 이러한 전설을 되새기기 위해서입니다. 더 더욱 신기한 것은 쌀 바위 구멍을 지키는 파수꾼처럼 말벌의 집이 범굴사의 천장 바위에 지금도 붙여 있다는 것입니다.

▲대성암에서 내려다 본 한강과 강동구 일대전경(사진제공-이창)     © 홍진기

(이 이야기는 아차산 주변의 토박이들에게 전해 오는 이야기로 광진구의 향토사학자인 김민수 선생이 재구성한 것입니다.)


아차산의 쌀 바위 전설(Ⅱ)

 옛날 옛적 신라 때의 일입니다. 신기한 일들을 척척 해내는 지체가 높으신 스님이 계셨습니다. 바로 의상조사였습니다. 의상조사는 부처님을 모실 수 있는 곳을 손수 찾아다녔습니다. 그래서 경치가 수려한 곳에 많은 절들을 지으셨습니다. 한강하류를 둘러보신 의상조사께서는 부처님이 계실 곳은 아차산 만한 곳이 없겠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아차산의 바위 굴 속에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말 그래로 범굴사(梵屈寺)였습니다.

 의상조사께서는 공부에 정진하셨습니다. 따라온 제자들까지도 열심히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산 속이라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험한 바위굴까지 와서 시주할 사람은 더욱 없었습니다. 의상조사께서는 한밤중에 홀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범굴사 천장 바위 구멍에서 쌀이 쏟아졌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여 공부에 정진하는 제자들을 먹였다고 합니다. 어느덧 범굴사는 부처님이 계신 법당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됐다 싶은 의상조사는 홀연히 다른 곳으로 떠나 버렸습니다.

 남아 있던 제자들은 먹을 양식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쌀을 얻기 위하여 그 옆에 크게 구멍을 뚫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하얀 뜨물만 쏟아져 내렸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는 어느 구멍에서도 쌀은 쏟아지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옛날 책에 쓰여 있다고 절의 주인인 안동준(安東俊;1930년生)씨가 말한 것을 향토사학자 김민수씨가 다시 꾸몄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옛날 책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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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10/19 [13:27]   ⓒ 디지털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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