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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동 옛이야기 2-동구다리 전설
 
홍진기   기사입력  2001/03/05 [22:39]
마을을 염려하는 술 받아 주는 귀신 이야기 능동은 안정된 주택가가 모여 있는 지역이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100여년전만해도 약 300여가구정도가 촌락을 형성하고 있고 대개는 아차산과 용마산으로 연결되는 울창한 나무숲과 지금의 어린이 대공원인 능지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몇몇 성씨들이 모여 집성촌을 이룬 이곳 능동은 과거부터 치성당에서 경건하게 제를 지내는 풍습이 있어 마을 공동체가 뿌리깊게 형성되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자신이 사는 마을에 대해서 얼마나 자부심이 깊었던지 귀신이 되어서도 마을을 보살폈다는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이 이야기를 지난주 짤뚝고개의 전설에 이은 능동의 옛이야기로 연재한다. (사진은 치성당 터 한쪽에 있는 알림의 종. 마을에 화재나 초상등 위급한 일이 생기면 종을쳐서 알렸다고 하며 이러한 전통은 지금도 이어져 마을 사람들간에 서로 돕는 정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구다리 전설

마을을 염려하는 술 받아 주는 귀신 이야기

능동의 옛 이름은 능골이다. 능골의 사람들은 매년 음력 2월 초하루와 10월 초하루가 되면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향나무가 있는 곳에서 치성을 올렸다. 치성을 드릴 때에는 치성할미를 위시하여 마을의 어른들이 모여 준비하였는데 마을 사람들 모두가 정갈한 옷을 입고 일도 하지 않으며, 크게 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특히 해산의 기미가 있는 여자들은 부정탄다하여 다른 마을로 잠시 옮겨가 해산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풍습은 자연스럽게 마을의 크고 작은 일을 서로 나눌 수 있도록 하였으며 어려운 일은 서로 돕고 기쁜 일은 함께 즐거워 해주는 협동과 공동체를 자연스럽게 형성하게 하였다.

능골 치성당 부근에는 효성이 지극하고 마을 어른들을 공경하는 젊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이 부부는 비록 가난하였으나 항상 즐겁게 생활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어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었다. 특히 조상에 대한 예와 마을일에 진심으로 임하였는데 치성을 드리는 준비나 그 제례에는 항상 온 정성을 드렸고 이러한 젊은 부부를 치성할미는 각별히 사랑하였다.
그러던 어느 해 크게 풍년이 들었고 그 해 10월 초 하루에 올리는 치성 준비는 더욱 풍성한 잔치가 되었다.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즐겁게 치성 준비를 하였는데 유독 젊은 부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젊은 부부도 기쁜 마음이었으나 부인이 해산의 기미를 보였고 마을의 풍습으로 치성을 드리는 기간에는 해산조차 정갈치 못한 일이라 하여 금하고 있었기에 젊은 부부는 치성 준비에 나타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치성기간에 해산을 할 것 같은 아낙들은 대개 마을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하였으나 이미 부모를 여의고 능골에서만 자란 젊은 부부는 마땅히 갈만한 곳이 없었다. 결국 부부는 치성을 드리는 전날까지 집에서 참아보다가 치성을 올리는 날에 마을을 떠나 아차산 숲 속에 하루 머물다가 돌아오기로 하였다.
음력 10월 초 하루 마을의 어른들이 치성당에 모이고 한 해의 풍년을 감사드리며 더욱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치성을 올렸다. 젊은 부부의 부인은 남편을 치성당으로 보내고 혼자 마을을 빠져나갔다. 능골에서 아차산 자락으로 조금만 가도 나무가 빽빽하고 울창하여 낮에도 여우가 나타나는 곳이었다. 그러나 부인은 자신으로 인해 마을이 행여 경건치 못할 것을 염려하여 홀로 숲으로 들어간 것이다.

경건하게 치성을 마치고(이때 치성 드셨다고 한다) 마을에는 즐거운 잔치가 벌어졌다. 마을 어른께 한해 수고를 감사 드리고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어른들은 집안의 평안과 자녀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덕담을 나누었다. 젊은 부부의 남편은 치성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왔으나 숲으로 들어간 아내가 걱정이 되었다. 뜬눈으로 밤을 새고 부인을 기다렸지만 아차산에 해가 걸리도록 부인은 돌아오지를 않았다.

남편은 곧 숲으로 부인을 찾아 나섰다. 쉽게 찾을 것이라고 생각되었으나 부인의 흔적을 찾기가 어려웠다. 당황한 남편은 아차산으로 이어진 숲 속을 이리저리 헤매었지만 부인의 모습은 없었다. 거의 저녁이 되어 모든 정신이 나간 남의 눈에 발견된 부인은 이미 죽어 있었다. 시신이 된 부인의 옆에는 갓 태어난 어린아이가 엄마의 젖을 찾아 뒤척이고 있었다. 숲으로 들어간 그 밤에 아이가 태어나고 부인은 혼자 해산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만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치성을 경건하게 하기 위한 마을 풍습을 지키기 위해 혼자 숲으로 들어가 아이를 낳고 죽은 부인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마을 공동 장례를 치렀다. 마을의 모든 어른들이 자신의 일처럼 슬퍼하였으며 마을 아낙들은 태어난 아이에게 젖동냥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 일이 있은 후 마을에는 이상한 일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치성당에서 북촌으로 넘어가는 곳에는 밭 사이에 ㄱ자로 생긴 죽은 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에 가끔 죽은 여인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가끔 밤을 틈타 치성당으로 외지인이 도둑질을 하려고 접근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때는 어김없이 목을 맨 여인의 모습이 나무에 걸려지고 놀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을 쳤다.

지금의 화양동은 옛 뱀장어골 이었는데 이곳으로 사람들은 술을 먹기 위하여 자주 말을 가곤 하였다. 거나하게 술에 취한 노인들은 늦은 시각 능골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동구다리를 지나야 했다. 동구다리는 지금의 어린이 대공원 정문에 있는 연못이 길가로 흐르는 냇물에 놓인 다리였다. 이 곳을 지나다 보면 왠 어여쁜 여인이 나타나 술상을 받고 가라고 취한 노인들을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보면 술 취한 노인은 동구다리 밑에 빠져 있어 당황하는 일들이 생겨났다.



어린이 대공원 정문 바로 안쪽의 연못. 동구다리는 이 연못의 물이
흘러내리는 어린이 대공원 정문 근처에 있었다고 한다.



동구다리는 어른 한길 반정도의 높이인데 술 취한 노인이 어떻게 내려갔는지 전혀 다치지도 않고 술에서 깨어나 마을에 돌아온 노인들은 한결같이 술상을 받으라는 여인에게 이끌려 갔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능골의 치성당을 지키기 위해 죽은 나무에 목맨 여인으로 나타나고, 술 취한 어른들이 마을에 들어 올 때 술을 깨워주기 위해 술상 주는 여인으로 나타나는 것이 경건한 치성을 지키기 위해 숨을 거둔 젊은 부부의 부인이 귀신이 되어 능골을 지키는 것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능동에서 몇 대를 살아 온 청년회 총무는 자신이 어렸을 때 치성당 아래에 ㄱ자로 죽은 검은 나무에 목을 맨 여자가 있어 근처에 접근하기를 꺼렸다고 한다. 또한 마을의 나이가 많은 어른들은 자신들이 젊었을 때 동구다리 밑에 빠져 술에 깨었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었다고 한다.
이는 능동이 과거부터 치성이라는 마을의 공동 제례를 통해 마을 사람들 간에도 서로 도와주며 긴밀하게 유지해온 마을 공동체와 마을 어른에 대한 공경의 문화와 풍습을 후대에도 전해주기 위해 귀신이 되어 지키려는 젊은 부부의 재미난 이야기로 전해 내려오는 것이다. 지금은 잊어져 가는 이야기지만 마을의 전통과 풍습을 엿 보는 소중한 것이라 할 수 있다.【구전된 이야기를 재구성. 자료제공 광진문화원 향토사업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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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1/03/05 [22:39]   ⓒ 디지털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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