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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바보 이야기
글 윤구병/ 그림 홍영우/ 휴먼어린이/ 어린이책시민연대 광진지회 주채영
 
디지털광진   기사입력  2019/09/03 [16:33]

눈알은 빨갛게 달아오르는데 가슴이 얼음덩이처럼 꽁꽁 얼어붙는 병, 서로 쳐다보기도 싫어하고, 이야기도 안 나누고, 누가 곁에 오기만 해도 몸서리가 나는 무서운 병이 온 마을을 덮쳤다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 울보 바보 이야기     © 디지털광진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 무서운 병을 잘 알고 있다. 나에게 실질적인 이익이 될 것인지, 조금이라도 손해가 될 것인지 눈알이 빨갛게 불을 켜고 하나하나 따져보는 우리의 모습 말이다. 서로의 마음 같은 것은 살필 여유가 없다. 결국 마음이 차가워지는 무서운 병에 걸린다. 마음이 얼어붙어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도 알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곁을 내어주지도 못한다.

 

울보 바보는 이렇게 마음이 얼어붙은 불쌍한 사람을 만나면 불쌍해.. 불쌍해...”

하면서 울음을 터트렸고, 그러면 온 마을 사람들이 덩달아 목 놓아 울었단다. 그 눈물은 개울을 이루고, 강을 이루고, 바다로 흘러가면서 온 세상 얼어붙은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고 온갖 풀과 나무와 짐승에게도 생기를 준다. 밤하늘에 저 많은 별들은 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 사람들의 눈에서 떨어진 눈물들이라고 이야기를 마무리 한다.

 

울보 바보의 이야기를 볼 때 마다 나는 늘 궁금했다. 울보 바보는 어떻게 상대방을 딱 보자마자 그들의 마음을 알아채고 함께 아파할 수 있었을까? 아주 오랫동안 이 그림책을 마음속에 간직해오면서도 물음에 확신 있는 답을 할 수 없다. 나는 울보 바보처럼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인 듯하다.

 

바보는 깊은 산속에서 따뜻한 웃음을 가진 할머니와 살면서 사회적인 상황과 타인의 시선에 관계없이 이익과 손해를 따지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게 자랐을 것이다. 그래서 그 맑은 마음에 타인의 상처와 아픔이 그대로 비춰지면 바보는 자신의 마음에 느껴지는 아픔대로 울었을 거라고 추측해본다.

 

나는 타인의 아픔을 그대로 공감하기에 이기적인 마음의 벽과 현실적인 조건들에 큰 영향을 받는다. 하루 저녁의 뉴스를 보더라도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슬픈 일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난다. 내가 그 슬픔들을 제대로 바라본다면 힘겨울 거라는 예측이 드는 순간 나의 반응은 자동적으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작동하게 된다. 그래서 눈감아 버리고 모르는 척 하거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면서 일상을 적당히 꾸려나간다. 그러면서도 이 그림책을 자주 꺼내어 보는 이유는 울보 바보처럼 타인의 마음을 완전하게 알아차리고 펑펑 울어줄 수 있는 맑고 용기 있는 마음이 나에게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는 울보 바보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요즘에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는 책의 구절이 새롭게 와 닿는다. 가만히 고요하게 있으면 나에게 슬픔이나 기쁨의 감정들이 다가올 때가 있다. 누군가를 기억하고 떠올리면 그 누군가와 연결된 느낌이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그것이 슬픔 또는 기쁨으로 깊게 다가온다. 중요한 건, 이런 순간이 매번 자연스럽게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마음이 불편하거나 힘들 때는 나의 얼어붙은 마음으로 타인의 마음을 알아챌 수 없다. 그럴 때는 나의 차가운 마음을 녹여줄 울보 바보를 만나야 한다. 울보 바보가 내 마음을 녹여주면 그제서야 나도 따뜻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공감하게 될 테니 말이다.

 

요즘 나의 옆에는 울보 바보의 역할을 해주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다 느껴진다. 생각해보면 지난 시절에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 우리와 멀리 또는 가까이에 울보 바보 같은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있다. 너무나 순수하고 맑아서 바보 같은 그들 덕분에 우리는 차가워지려는 마음을 돌아보며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아픔과 고통에 공감하고 슬퍼하고 울음을 터트려주는 바보들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울보 바보가 되어주어 다독거리면 울보 바보들에게 더 큰 힘이 나오고, 그 힘에 더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위로를 받을 수 있게 말이다. 차디차게 얼어붙은 마음들도 만만치 않은 세상살이에 상처받은 마음들일 테다. 그 마음들이 사르르 녹게 되는 울보 바보들의 세상을 그려본다.

 

 글을 써주신 주채영 님은 어린이책시민연대 광진지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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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9/03 [16:33]   ⓒ 디지털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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