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아차산 박사로 불리우는 광진구의 대표적인 향토사학자인 김민수 선생이 노유동 노룬산에 얽힌 전설을 재구성하여 「디지털광진」에 보내왔다.
「디지털광진」에서는 지난 3월부터 4월까지 1개월 간 연재했던 5편의 아차산 관련 전설에 이어 노룬산 금닭에 얽힌 전설을 올린다.
노룬산 금닭의 전설
김민수(향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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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뚝섬나루 전경(자료제공 - 성동구청 홈페이지) ©디지털광진 |
옛날 옛적부터 한강변에서 가장 큰 나루는 중랑천이 흘러 들어오는 두모포(豆毛浦)였다. 살곶이다리(箭串橋)가 놓이게 되자, 그 동쪽의 뚝섬나루는 새로운 포구가 되었다. 그래서 뚝섬나루는 작고, 큰배들이 쉴새없이 드나들었다. 배만이 아니라 강원도에서 내려오는 목재들을 엮어 맨 뗏배는 지금의 긴 기차가 달려오는 것 같았다. 또한 남한강에서부터 곡물을 실은 돛단배들이 물살을 가르며 내닫는 모습은 한 폭의 동양화였다. 그러나 힘겹게 한강을 거슬러 오르는 배들도 있었다. 새우젓 배의 뱃사공들이 뱃머리에 부딪치는 파도소리에 장단을 맞추어 노를 젓는 소리는 흥까지 겨웠다. 이렇듯 뚝섬나루는 항상 활기가 넘치던 포구였다.
뚝섬나루 가장 큰 부자인 장도방 뚝섬나루는 품삯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배의 물건들을 싣고 나르는 일은 지게질 밖에는 별 도리가 없었다. 뚝섬나루에서 지게 하나만 있으면 먹고사는 것은 걱정이 없다고 말하는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였다. 그래서 사방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을 부리는 장사꾼들도 점점 많아졌다. 이러한 장사꾼들 중에서 가장 큰 부자를 도방(都房)이라고 불렀다. 그가 바로 뚝섬나루에서 장(張)씨 성을 가진 장도방이었다.
장도방은 글씨를 모르는 까막눈이었다. 장사가 점점 커지자, 부리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래서 많은 물건과 복잡한 셈을 적어두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그러나 남을 믿지 않는 장도방은 장부를 정리할 사람을 따로 두지 않았다. 여러 개의 작은 항아리에 검은콩을 넣어 두는 것이 그의 셈의 전부였다. 이를 딱하게 여긴 관가의 아전 하나가 장도방에게 말했다.
"여보게 장도방, 사람을 쓰게. 자네 혼자 장사하다가는 옳게 자네 송장 장사를 치르고 말 걸세"
장도방은 정색을 하면서 아전의 말을 되받았다.
"이봐, 나 혼자 장사하다가 내 송장 장사 치르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남한테 속아서 화병으로 죽으면 내 송장 치울 사람도 없을 걸세"
아전은 장도방의 옹고집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직이 말했다.
"걱정할 것 없네, 자네 손발처럼 부릴 젊은이가 하나 있네"
그리고서 젊은이의 지나온 내력을 이야기하였다.
장도방은 소금배를 전복시킨 젊은이를 종으로 사서 부리게 되는데
젊은이는 나라에 바치는 곡물들을 실어 나르는 조운(漕運)배를 부렸다. 요즘 말로 해운수송업자였다. 소금을 한양으로 운반하는 계약을 맺은 것이 그의 화근이었다. 남쪽 바닷가에서 멀리 한양까지 올라오는 것도 어려운 일이거니와 소금을 비나 파도에 젖게 하면 모두 그 값을 갚아야 했다. 그 대신 소금을 운반하는 뱃삯은 다른 것을 나르는 것보다 훨씬 많았다. 욕심을 낸 젊은이는 한번에 소금을 많이 실어 나를 요량으로 큰배를 빌렸다. 바람, 파도, 바닷길 등을 자세히 살펴서 소금을 운반했다. 그의 생각은 맞았고, 소금배는 한강으로 들어왔다. 이제는 걱정할 것이 없었다. 조금만 더 한강을 거슬러 올라와서 뚝섬나루에 닿기만 하면 큰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어처구니없는 사고는 한강에서 일어났다. 소금 배는 바다를 건너므로 밑이 깊었다. 강을 건너는 밑이 평평한 널배와는 달랐다. 그만 소금배는 물의 깊이가 낮은 모래위로 올라서 버린 것이다. 밀려오는 한강 물은 소금배에 눌린 모래들을 쓸어 내렸다. 소금배는 한쪽으로 기울어갔다. 끝내 소금 가마니들을 한강으로 쏟아내면서 배는 부서지고 말았다.
젊은이는 관가에 끌려왔다. 빌려온 배까지 부서졌으니, 값나가는 것이라고는 젊은이 몸뚱이 하나 뿐이었다. 소금을 걷어야 하는 관가나, 빈털터리인 젊은이나 딱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관가에서는 젊은이를 종으로 팔기로 결정하였다. 다만 얼마라도 받아서 소금을 다시 사들여야 한다. 그러려면 젊은이의 몸값을 많이 받아야 했다. 그래야 한강에 쏟아진 소금의 절반이라도 보충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상부의 문책을 피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장도방이었다. 장도방이라면 손발처럼 부릴 몸종이 있어야 한다. 셈이 밝은 젊은이야말로 얼마나 안성맞춤이냐. 이렇게 생각한 관가에서는 장도방과 친한 아전을 보낸 것이었다.
아전은 장도방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몸종이 필요한 이유를 세세하게 설명하였다. 더구나 셈이 밝은 젊은이가 아닌가. 또한 종은 주인의 재산이었다. 엉덩이에 말이나 소처럼 낙인을 찍었다. 돌아다닐 수 있는 호패(지금의 주민등록증)도 없으므로 마음대로 부릴 수가 있었다. 어쩌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팔아 버리면 된다. 아전의 이야기에 솔깃한 장도방은 관가에 잡혀있는 젊은이를 많은 돈을 주고 사기로 하였다.
셈이 밝은 젊은이 덕에 장도방의 점포는 날로 번성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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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섬나루터 표석. 현재 표석은 영동대교 아래 한강시민공원안에 자리잡고 있다.(뒤에 보이는 다리가 영동대교) ©디지털광진 |
부지런하기로는 뚝섬나루에서 장도방을 따를 사람이 없었다. 별을 보고 일어나고 별이 뜬 후에야 일을 마치는 장도방이었다. 그래서 별명이 별도방이라고도 하였다. 이러한 장도방에게 손발처럼 부리는 젊은 종이 생겼으니 장도방의 점포(市廛 시전)는 날로 번성하였다.
젊은이는 셈만 밝은 것이 아니라 전국을 누비고 다녔으므로 긴 안목이 있었다. 흉년, 장마, 가뭄, 명절을 가려 그가 선택한 물건들은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점포의 사방으로 물건들을 쌓아두는 헛간들이 즐비하게 들어섰다. 뒤꼍으로는 고래등같은 장도방의 살림채도 새로 지었다. 한강의 포구에서 장도방을 따를 부자는 없었다. 장도방은 젊은이가 고마웠다. 그래서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말해보라고 넌지시 물었다. 젊은이는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종살이에서 풀어주십시오. 그러면 더욱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그런 말이 나오리라는 것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직접 듣고 보니, 장도방은 적이 놀랐다. 장도방은 정신을 가다듬었다.
지금은 아니다. 더 큰 부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젊은이를 종으로 오래 묶어 두어야 한다.
장도방은 애정 어린 눈으로 젊은이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여보게 자네 마음을 낸들 모르겠나. 자네를 곧바로 면천(免賤)시켜 보게. 장도방이 돈 많이 벌어서 배가 터졌다고 헛소문이 날 걸세. 그 전에 얌전한 색시 하나를 구해 줄 테니 살림을 차리는 것이 어떤가?."
장도방의 속마음을 알아챈 젊은이는 고향에 두고 온 사랑하는 아내가 그리웠다. 그동안 종살이하는 처지에 아내까지 덧붙이는 것이 싫어서 입을 다물고 있었던 터였다. 종살이가 풀리는 날도 오래 걸릴 것이고, 그렇다고 이렇게 혼자 살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보다 사랑하는 아내가 너무 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도방 어른, 사실은 여기 오기 전에 바로 짝을 지었던 아내가 있었습니다. 제가 이 꼴이 되었으니 아낸들 편히 있겠습니까?. 모아 두었던 재산을 다 팔아도 부서진 배 값도 안 될텐데, 지금도 잘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
장도방의 얼굴은 금새 밝아졌다. 젊은이의 아내까지 온다면 두 겹으로 젊은이를 옭아매는 것이 아닌가.
"아내가 있었구먼, 아무 걱정 말게, 빚이 있다면 얼마나 있겠나. 내가 다 물어주고 자네 아내를 데려 오겠네"
장도방은 기쁜 나머지 몹시도 수선을 떨었다. 큰 행랑채를 비워서 젊은 부부가 살도록 하였다. 거기에 들어가는 세간들도 모두 좋은 것으로 장만하여 주었다. 그러나 젊은이의 아내를 데리러 가는 것은 다른 사람을 시켰다. 워낙 의심이 많은 장도방인지라 젊은이가 도망칠까봐, 이 일만은 다른 사람을 시켰다.
젊은이의 아내는 빼어난 미인, 장도방은 흑심을 품게 되는데
뚝섬나루를 떠난 배가 돌아온다는 기별이 왔다. 장도방의 점포는 웅성거렸다. 안채의 아낙네들은 음식을 만드느라 부산했다. 그리고 남정네들은 뚝섬나루에 몰려가서, 한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젊은이의 아내를 태운 배를 기다리며 얄궂은 농담으로 낄낄거렸다. 바람을 안은 돛단배는 가재걸음으로 느릿느릿 한강을 거슬러 올라왔다. 이윽고 뚝섬나루에 다다른 돛단배가 젊은이의 아내인 새댁을 내려놓자, 구경나온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새댁은 선녀처럼 아름다웠다. 사뿐사뿐 걷는 모습은 구름을 밟고 가는 것 같았다. 그 많은 뚝섬나루 주막의 내로라 하는 기생들도 이러한 새댁에게는 견줄 바가 못되었다. 젊은이와 새댁은 한 쌍의 원앙이 조용한 호숫가를 가르면서 보금자리를 찾아가듯이 장도방의 집으로 들어섰다.
뚝섬나루 사람들은 젊은이의 총명함과 그의 아내인 새댁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그럴수록 애가 타는 것은 장도방이었다. 장도방은 양주의 관리들이나 지방의 보부상들과도 어울려서 주막이나 기방을 드나들었다. 그러나 돈이 아까워서 예쁜 기생들의 유혹을 뿌리쳤었다. 새댁은 달랐다. 새댁의 모습은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새록새록 장도방의 가슴 속 깊이 새겨져 헤어날 수 없었다. 뜬눈으로 밤을 새는 것도 예사가 되어버렸다. 점포로 나가지도 않고 새댁의 모습을 훔쳐보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 되어갔다. 그러나 점포는 젊은이 덕분에 더욱 더 크게 번성하였다.
장도방은 어떻게 해서든지 새댁을 손에 넣을 궁리를 하였다. 젊은이는 관가에서 사온 종이었으나 그의 새댁은 달랐다. 새댁은 누구에게도 속박 받지 않는 평민이었다. 며칠을 꿍꿍거리던 장도방은 묘안을 찾아냈다. 그리고는 어느 날 젊은이를 주막으로 불러냈다. 술잔을 서너 차례 젊은이에게 건넨 장도방은 이윽고 검은 마음을 열어 보였다.
"자네를 종살이에서 면천시켜 줄 생각이네."
뜻밖의 이야기를 들은 젊은이는 자세를 고쳐 잡고 고마운 인사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장도방은 손을 내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앉게 앉게. 뿐만 아니라 장사 밑천도 두둑이 챙겨 줄 생각이네. 어쩌면 한강하구에 있는 객주(客主) 하나를 떼어줄 수도 있지"
젊은이는 장도방의 넉넉한 제안에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굳어진 젊은이의 표정을 살핀 장도방은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나도 이제는 늙었네. 이만큼 재산을 이루었으니 편안히 살아도 보아야 할 것이 아닌가?. 자네는 젊고 총명하니 어디간들 못 살겠나. 가는 곳마다 예쁘고 젊은 계집들이 있지 않겠나?. 여보게 눈 한번 딱 감고, 자네 처를 나에게 주게. 자네 소원은 뭐든지 다 들어주겠네."
장도방은 선술상 너머로 젊은이의 손을 잡고 애걸하다시피 하였다. 젊은이는 말이 없었다. 그리고 서서히 고개를 쳐들고 장도방을 노려보았다. 분노에 찬 눈빛이 장도방을 금방 삼킬 것 같았다. 천천히 일어선 젊은이는 그 때까지도 젊은이의 손을 잡고 있던 장도방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휑하니 주막을 나가 버렸다.
이러한 일이 있은 이후로 장도방이 젊은이의 아내인 새댁을 넘본다는 소문이 뚝섬나루에서 한입 두입 건너서 퍼져 나갔다. 불안한 나날을 보내는 것은 젊은 부부였다. 그렇다고 장도방이라고 편할 수는 없었다. 누구나 욕심 많은 장도방을 미워하였고, 젊은 부부를 동정하였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자, 장도방은 몸이 달았다. 손바닥을 뒤집어 보듯 자기의 장사 속을 다 아는 젊은이가 아닌가?. 또한 음흉한 속마음까지 들켰으니 앞으로의 일이 두렵기까지 하였다. 아무리 자기의 종이라고 하더라도 남의 눈이 있는데, 마음대로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장도방은 흉계를 꾸며 젊은이를 추운 겨울을 앞두고 영월로 보내고
뿐만 아니라 차가워진 새댁의 마음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장도방은 궁리 끝에 젊은이를 멀리 보내서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그것은 영월에 모아두었던 나무들을 남한강을 따라 뚝섬나루까지 끌어오는 일이었다. 장도방은 느닷없이 점포에 나타났다. 젊은이를 비롯하여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놀랐다.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하는 불안이 적막하게 이어졌다.
장도방은 쌓아놓은 물건들을 뒤척거렸다. 그리고 나서 헛기침을 하더니, 젊은이를 향하여 말을 꺼냈다.
"여보게 아무래도 영월에 쌓아 논 나무들을 끌고 와야 하겠네"
젊은이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지금은 늦가을입니다. 한강물도 적습니다. 또한 나무들을 엮어서 뗏배로 만들려면 초겨울이 될 것입니다. 나무를 내려오는 일은 어렵습니다."
장도방은 기다렸다는 듯이 다그쳤다.
"이봐!. 어려운 일을 해내야 돈이 되지, 지금 궁궐을 짓는데 나무가 없어서 온통 난리가 아닌가?. 그래서 자네를 시키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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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를 묶어 길게 연결한 채 한강을 타고 내려오는 뗏배의 모습(1930년대. 출처 - 성동구지) ©디지털광진 |
젊은이는 장도방의 속셈을 알아 차렸다. 속을 보인 장도방은 넌지시 말을 이어나갔다.
"같이 따라갈 뗏사공이 없으면 산판에 있는 벌목꾼들 중에서 쓸만한 놈을 골라 같이 내려오게. 품삯은 넉넉히 주고 말일세."
누가 겨울에 들어서는 남한강을 뗏배를 타고 내려올 것인가?. 강변의 살얼음은 칼날처럼 예리하다. 또한 매서운 추위는 얼어죽기 십상이었다. 더군다나 도방의 모든 일을 도맡아 보는 나에게 뗏사공의 일을 시키는 자체가 장도방의 흉계였다. 젊은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젊은이는 서둘러 봇짐을 쌌다. 장도방의 흉계를 안 이상, 머뭇거릴 여유가 없었다. 영월로 가는 길은 원주를 거쳐서 육로로 가야한다. 빨리 뗏배 작업을 마쳐 겨울이 오기 전에 남한강을 따라 내려와야 한다. 그래야만 사랑하는 아내를 지킬 수 있다. 젊은이가 영월로 떠나는 날, 뚝섬나루의 모든 사람들은 서러웠다. 자기의 자식을 군역(軍役)에 내보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장도방의 눈이 무서워 아무도 젊은이를 배웅하지는 않았다. 그의 아내인 새댁만이 젊은이를 뒤따랐다.
뚝섬나루를 벗어난 두 사람은 황토 흙으로 다져진 동산에 이르렀다. 어지간한 홍수에도 잠기지 않아서 노룬산(노란 구릉)이라고 하는 곳이었다. 떠나는 젊은이는 마음이 아팠다. 장도방이 어떤 수작으로 혼자 있는 아내를 괴롭힐 것인가 하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아내는 남편의 두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여보, 살아서 돌아오세요. 매일 이곳에 와서 한강을 바라보며 당신을 기다릴게요. 당신이 돌아오지 않으시면, 저는 여기서 망부석(望夫石)이 되어 서 있을 거예요."
젊은이는 아내가 고마웠다. 자기의 마음을 헤아려 주고 사랑의 굳은 맹세로써 용기를 북돋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아내에게 젊은이는 서러운 표정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여보, 보름이면 돼요. 오늘이 초하루이니 다음 보름날 꼭 돌아 올 거요. 만약 장도방이 당신에게 수작을 부리면 가만 두지 않을 거요. 세상이 달라지고 있어요. 조금만 더 기다려요. 좋은 세상 만나서 잘 살 수 있을 거요."
젊은이는 사랑하는 아내를 뒤로하고 영월을 향하여 잽싼 걸음을 옮겼다.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새댁은 망부석이 되어 노룬산에 묻히는데. 늦가을 강바람은 살을 에는 것 같았다. 그러나 새댁은 다음날부터 노룬산에 올라섰다. 그리고 하염없이 흐르는 한강을 바라보았다. 날이 어두워져서 산마루에 달무리가 올라서는 것을 보고서야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달이 점점 커가면서 차 갈수록 뚝섬나루의 사람들은 조바심이 났다. 젊은이가 보름 내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남한강 상류는 살얼음판이 될 것이다. 젊은이 혼자의 힘으로 살얼음을 헤치고 뗏배를 몰고 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뗏배를 두고 온다면 장도방에게 구실을 주어서 어떠한 벌을 받을 지도 모른다. 아예 중국 장사치에게 팔아 버릴 수도 있다. 온갖 걱정 속에서 뚝섬나루에는 보름달이 떴다. 그러나 그 날도, 그 다음날도 젊은이는 오지 않았다. 노룬산에 올라선 새댁의 두루마기만이 깃발처럼 펄럭거렸다. 이렇게 뚝섬나루의 사람들은 노룬산의 새댁을 바라보면서 하루하루를 안타깝게 넘겼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도 눈이 많이 왔다. 그래서 한강은 아예 하얀 벌판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새댁은 거르는 날 없이 노룬산에 올라 하얀 한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 까마귀 떼만이 뗏배처럼 몰려 왔다가 날아가 버리곤 하였다. 그러나 누구하나 새댁을 데리러 가는 사람은 없었다. 이제는 장도방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애틋한 새댁의 사랑에 티가 될 것 같아 숨소리도 죽이고 쳐다보고만 있어야 했다.
겨울에서도 가장 춥다는 대한(大寒) 날이었다. 장도방은 아침 일찍 집을 나서려는 새댁을 그의 사랑채로 불러 들였다. 주위의 사람들을 물리치고 새댁만을 들어오게 하였다. 새댁은 여위었지만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새 원숙한 여인이 되어 있었다. 장도방은 엉거주춤 방석을 내 밀었다.
"앉게, 어서 앉아. 얼마나 고생이 많은가?. 믿을 사람이 없어서 자네 남편을 보냈는데, 원 이것 참------"
염치없는 장도방이지만 새댁을 바로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새댁의 자태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힐끔 곁눈질을 하였다. 그리고 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소한(小寒), 대한(大寒)에 나간 사람은 찾지도 말라고 했어. 이봐 새댁, 몇 달이나 지났지 않은가. 이제는 단념하게. 산 사람이라도 살아야지."
새댁은 다소곳이 앉아서 흐트러짐이 없었다. 오히려 장도방이 손을 저어 가면서 수선을 떨었다.
"글세, 걸어온다고 해도 열흘이면 족하네. 뗏목을 버리고 강 길로 온다면 닷새면 충분하지. 아닌 말로 허기진 산짐승에게 잡혀 먹혔는지, 강 코지에 걸려 얼어죽었는지, 하여간 살아 있지는 않네. 자네가 안쓰러워 쯧쯧---"
그리고 나서 앉은걸음으로 새댁 앞으로 몸을 내밀었다.
"설령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종살이를 면할 수가 없지 않은가. 엉뚱한 자네만 묶어 놓고. 자네도 알겠지만, 저번에 좋은 방도를 알려주었는데, 원 내 말을 안 듣더군. 누이 좋고 매부 좋자고 한 일인데"
새댁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다소곳이 앉아 창문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침 햇살이 엷은 창벽을 넘어서 새댁의 얼굴을 비췄다. 붉은 기운이 서린 새댁의 얼굴은 하늘의 선녀가 금방 내려와 앉아있는 것처럼 황홀하기까지 하였다. 흥분을 감추지 못한 장도방은 손을 연신 비비대더니, 얼른 일어섰다. 그리고 사랑방의 옆에 붙어있는 별실의 미닫이를 열어 제쳤다. 별실에는 중국의 물건들이 형형색색으로 쌓여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을 통하여 들어온 서양의 희귀한 물건들도 차곡차곡 놓여 있었다. 장도방은 새댁을 돌아보고 섰다.
"이봐, 새댁. 이것이 모두 자네 걸세, 인생이 얼마나 길다고 고생, 고생하고 산단 말인가. 내 말 들어, 이 세상 모든 호강을 배로 싣고 와서라도 자네에게 몽땅 주겠네."
새댁은 눈썹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그대로 뚫어지게 새벽빛을 머금은 창문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장도방은 허리춤에 두손을 올려 잡았다. 그리고 바깥을 향하여 쩌렁거리도록 소리를 질렀다.
"금 궤짝을 가져오너라, 어서 빨리 가져오너라."
밖에서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흥분을 감추지 못한 장도방은 뒷짐을 진 채 방안을 서성거렸다. 잠시 두 장정이 묵직한 나무궤짝을 대청마루에 올려놓았다. 방문을 열어제치고 나간 장도방은 궤짝을 열었다. 그리고 길쭉하게 네모난 황금덩이를 두 손에 들고 새댁 앞으로 와서 쪼그려 앉았다.
"이보게 이게 다 금덩이야. 몇 궤짝이나 더 있네. 나라님보다도 내가 더 많은 금덩이를 가지고 있어. 이래도 자네가 내 말을 안 들을 텐가."
그제서야 새댁은 장도방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직이 말했다.
"도방 어른께서는 창고마다 금덩이들을 쌓아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마음 속 깊은 곳에 금덩이를 쌓아 두었습니다."
말을 마친 새댁은 일어섰다. 대청마루를 내려서더니, 어느새 대문을 벗어나고 있었다. 아무도 새댁을 막는 사람은 없었다.
그 해의 대한 날은 얼마나 추웠는지 눈도 오지 않았다. 매서운 강바람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돛을 내리고 강가에 비스듬히 올라선 배들도 반쯤은 눈에 덮여 있었다. 눈이 녹는 봄까지 뚝섬나루는 이렇게 한적하였다. 그러나 화롯불을 뒤척이며 모여 앉은 점포의 장사꾼들은 장도방을 뿌리치고 노룬산에 오른 새댁의 이야기로 수군거렸다.
어느 때처럼 그렇게 춥던 대한 날도 저물어 갔다. 그리고 금새 어두운 밤이 되었다. 그러나 새댁은 돌아오지 않았다. 새댁은 항상 솜바지를 받쳐입고 치마를 둘렀다. 그리고 두루마기를 입었다. 그 위에 누빈 장옷까지 쓰고 있었다. 차비를 잘 하고 있었으므로 얼어죽을 일은 없었다. 어둡기 전까지는 노룬산에 서 있는 새댁을 본 사람들이 더러 있어서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정이 지나도 새댁은 돌아오지 않았다. 더럭 겁이 난 것은 장도방이었다. 홱 뿌리치고 돌아선 새댁이 선하게 떠올랐다. 아침에 건넨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어두워지자 도망간 것은 아닐까. 혹시 모를 일이다. 못된 놈들이 보쌈 하여 간 것은 아닐까?. 장도방은 집안의 장정들을 깨웠다. 그리고 횃불을 들고 노룬산에 가서 새댁을 찾으라고 소리쳤다.
횃불들이 노룬산에 다다르자, 거기에 새댁은 서 있었다. 엷은 치마 자락이 바람에 나부끼는 채로 그렇게 서 있었다. 장정들이 소리치며 다가서도 새댁은 아랑곳하지 않고 서 있었다. 앞선 장정이 새댁의 소매를 잡고 흔들었다. 그래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횃불을 새댁의 얼굴 가까이 들이민 장정은 깜짝 놀라 횃불을 떨어뜨렸다. 새댁은 한강을 바라보며 굳어져 있었다. 한강을 바라보는 두 눈망울만이 또렷하였다. 눈 위에는 솜바지, 두루마기, 장옷이 차곡차곡 개어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가죽신까지 벗어 놓고 있었다. 새댁은 버선발을 눈 속 깊이 박은 채, 망부석이 되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새댁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장도방은 어이가 없는 듯 서성거렸다. 그리고 혼자 말처럼 중얼거렸다.
독한 년 죽었구먼, 내 속만 태우더니 결국 죽었구먼-----
마당으로 내려선 장도방은 북어 꾸러미가 쌓인 곳까지 걸어갔다. 북어 꾸러미를 만지작거리던 장도방은 다시 중얼거렸다.
명태는 죽어서 북어나 되지만, 사람 죽은 것은 헛 거야, 원 재수 없는 년.
그러더니 웅성거리는 집안 사람들을 향하여 소리쳤다.
"재수 없는 년을 얼음 구덩이에다가 파묻어. 눈이 녹으면 살쾡이들이나 뜯어먹게. 올해 재수는 옴 붙었네."
마당에 침을 홱 뱉은 장도방은 사랑채로 들어가 버렸다.
장정들은 삽과 괭이를 들고 노룬산으로 갔다. 새댁을 눕히고 벗어 놓았던 옷들을 다시 입힌 후 가죽신까지 신겼다. 그리고 한 길이나 되는 눈을 걷어내었다. 차마 눈 속에 묻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땅을 파기로 하였다. 얼어붙은 겉 땅을 파 내려가자, 찰진 노란 흙이 나타났다. 황금처럼 샛노란 흙이 삽질 따라 쑴벅쑴벅 떠올려졌다. 새댁은 그렇게 망부석 된 자리에 누워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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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본 광진구 전경. 아래쪽이 한강이고 보이는 다리는 청담대교로, 뚝섬나루는 자양동에서 중랑천 입구까지 길게 자리잡고 있었다고 한다.(사진제공:광진구청) ©디지털광진 |
죽어서 돌아온 젊은이도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노룬산에 묻혔다. 강가에 버들강아지들이 꽃망울을 터뜨리며 새봄을 알렸다. 얼음장 밑으로 구슬 같은 한강물이 흘러 내렸다. 이내 쩍쩍거리며 얼음장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뚝섬나루는 다시 점포들을 열 채비로 바빴다. 그러던 어느 날, 뗏목들이 살얼음을 깨치면서 내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얼음 조각을 밀면서 내려오는 뗏목은 분명히 묶여있는 뗏배였다.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뗏배에 사람이 있다."
모두들 일손을 멈추고 내려오는 뗏배를 바라보았다. 한강에 가로놓인 뗏배는 깨어진 얼음조각을 밀면서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오는 뗏배의 움막은 부서져 있었다. 거기에 빨래처럼 널려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젊은이라는 것을 안 뚝섬나루의 사람들은 노룬산 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앞서 간 사람이 갈고리를 던져서 뗏배를 끌러 당겼다. 뗏배는 노룬산 어귀에 다다라 멈췄다. 젊은이의 얼굴은 검게 썩어가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바라보듯 떠 있는 두 눈망울만이 옛날의 젊은이임을 알 수 있었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뚝섬나루의 사람들은 젊은이를 새댁의 옆에 나란히 묻기로 하였다. 그리고 무덤을 하나로 만들었다. 죽어서라도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그들은 북한강에 청평댐을 만들었다. 한강의 한 갈래를 막아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광진교를 놓아서 한강의 북쪽과 남쪽을 마음대로 드나들게 하였다. 뚝섬나루는 쓸모가 없게 되었다. 성시를 이루었던 뚝섬나루의 점포들은 온데간데없어졌다. 장도방의 궁궐 같은 집만이 뚝섬나루에 덩그러니 서 있어서 을씨년스러웠다. 그러나 장도방의 가족들은 빚만 지고 모두 떠났다고 한다. 그래서 그 집은 흉가(凶家)가 되었다. 거미줄로 얽힌 집 안에서는 밤마다 도깨비들이 놀고 간다는 소문만이 무성하였다. 이러한 장도방의 집도 한강의 큰 홍수 때 뗏배처럼 떠내려가 버렸다. 뚝섬나루는 황량한 벌판이 되어 버렸다.
아차산에 올라 산치성을 올리려는 사람들 눈에 보인 노룬산의 금닭은.일본사람들이 떠나 버리고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었다. 모두들 기뻐서 힘껏 만세를 불렀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산치성(山神祭)을 올리기로 하였다. 정성껏 만든 음식(祭物)을 가지고 아침 일찍 아차산에 올랐다. 우리나라를 지켜준 산신령님과 동네를 보호하신 조상님께 정성을 드리는 제사였다. 그래서 높고 깨끗한 아차산에 올라온 것이었다. 제사는 아침해가 떠오르는 때를 맞춰 지내기로 하였다. 아침해가 떠오르면서 한강을 비추기 시작했다. 햇살을 머금은 한강은 잔잔한 빛들을 반사하며 긴 허리를 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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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룬산 금닭의 전설을 안고 있는 현재의 노룬산 시장 전경 ©디지털광진 |
그때였다. 샛노란 노룬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황금의 섬처럼 선명한 윤곽을 드러내면서 나타난 것이었다. 점점 해가 솟아오르자, 한 쌍의 황금 닭이 서로 마주하여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금닭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노룬산의 금닭 한 쌍을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온 누리가 밝아진 이후에야 금닭의 모습은 사라졌다. 이러한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아차산 기슭에 퍼져 나갔다. 옛일들을 더듬은 사람들은 금닭 한 쌍이 뚝섬나루의 젊은 부부였음을 알아내었다. 마음 속 깊이 황금을 품었던 젊은 부부였다. 그래서 산치성 때에는 따로 젊은 부부의 넋도 위로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찰진 노룬산의 황토 흙은 그때까지 벽돌공장이 재료가 되어 퍼 내가고 있었다. 큰 홍수 때에는 물에 잠기므로 집을 짓거나 무덤을 만드는 일도 없었다. 무덤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젊은 부부의 것이 유일한 것이었다. 노룬산의 금닭 이야기를 안 사람들은 이후로 부부 금실이 좋은 명당자리가 이곳이라고 하여 너도나도 무덤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노룬산은 금새 공동묘지가 되어 버렸다. 이제는 노룬산시장이 되어 버렸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가난하여도 부부의 금실이 좋아서 오순도순 살아간다고 한다. 아마도 못 다한 사랑을 노룬산 사람들에게서 꽃 피우려는 젊은 부부의 보살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