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기술의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까. 과거 로마와 진의 대제국처럼 팍스 AI를 이룩할 것인가. 아니면 기술문명의 평준화로 인류가 꿈꿔온 유토피아에 가까워질 것인가.
사단법인 미래학회(회장 이규연)는 이 같은 문제의식에 대한 지혜로운 답안을 찾아가기 위해 오는 12일 추계학술대회(공동준비위원장 이명호·윤석만)를 개최한다. 오후 13시 20분부터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열리며, 이정헌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이 공동 주관한다. 주제는 ‘인공지능의 미래, 제국화인가 민주화인가’이다.
엠파이어 vs 유토피아 갈림길
이규연 학회장은 “챗GPT 등 LLM(대형언어모델)에 기반한 생성형 인공지능은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논리적 글쓰기부터 이미지·동영상 제작 등 인간 고유의 분야였던 인지활동 영역에서 뛰어난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있다”며 “점점 인간의 삶에 깊숙이 관여하며 인간을 대체하게 될 인공지능의 문제점과 그에 대한 대비책을 미리 연구하는 차원에서 학술대회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인공지능은 산업적 측면에서부터 판도를 크게 바꾸고 있다. 급속하게 성장하는 산업과 기업이 있는 반면, 빠르게 쇠퇴하는 산업과 기업도 있다.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많은 일자리가 소멸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런 변화가 우리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과 권력 집중을 초래할 것인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김문조 명예교수 기조강연, 이정헌·천하람 의원 토론 이색적
이날 기조강연은 사회학계의 거두인 김문조 고려대 명예교수가 맡았다. 김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시대와 문명을 넘나드는 지적 통찰을 바탕으로 인공지능의 미래를 조망할 예정이다. 김 교수는 “미래에는 크게 두 가지의 선택지가 놓여 있다”며 “인공지능 제국화냐, 민주화냐의 갈림길에서 인류문명이 한 단계 진보할 수 있는 조화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조강연에 이어 이정헌·천하람 의원이 토론자로 나선다. 이 의원은 “인공지능 혁명이 촉발한 문명사적 대전환기를 맞이한 지금 확고한 전략이 없다면 대한민국은 번영할 수 없다”며 “과감하면서도 신중한 정책과 입법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EU와 미국 등 선진국 모델을 깊이 연구해 산업 육성과 인권 보호 사이 균형점을 찾아야 하며, 오늘 학술대회가 '대한민국 AI법'을 설계하는 역사적인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천 의원은 "인공지능 기술을 주도하는 메가 기업의 동향과 그들이 인공지능을 통해 제공할 편의성 등을 고려하면 인류 스스로 인공지능에 예속되는 것을 원하게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인공지능을 지배하고 미래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AI에 대한 법인격 부여, 개인의 권리 보호와 혁신의 장려 방안 등을 깊이 있게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조강연 및 토론 후엔 2개의 세션으로 나눠 학술대회를 진행한다. 첫 번째 세션에선 ‘한국의 인공지능법, 어떻게 제정할 것인가’를 주제로 럭스로보의 창업자인 오상훈 대표가 국내 인공지능·로봇 산업의 현실과 규제의 문제점을 다룬다. 이어 정준화 국회입법조사 조사관이 인공지능 정치의 위험성과 우려를 주제로 발표한다. 두 번째 세션에서는 ‘인공지능 규제와 진흥 법제화 사례’를 주제로 이명호 미래학회 부회장이 글로벌 인공지능 거버넌스의 동향과 시사점을 살펴본다. 유럽과 미국 등 인공지능 기술에 앞선 국가들의 다양한 사례를 소개할 예정이다.
제국화 치닫는 미국 중심 빅테크 기업들
특히 이날 학술대회에선 최신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 흐름과 각 국의 대응 현황 등이 상세하게 소개될 전망이다. 그 중에서도 최근 유행하는 멀티모달(Multimodal) 생성형 인공지능이 파운데이션 모델로 진화하는 과정을 면밀히 살펴본다. 이는 대규모 데이터 처리가 가능한 빅테크 기업의 집중화로 이어져 천문학적인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소수 기업이 주도(독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짚어본다.
특히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한 곳은 미국 기업이 대다수이고 일부 중국 기업이 있을 뿐이다. 이는 결국 기술과 데이터의 독점, 알고리즘 편향, 디지털 격차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로 인해 소수 기업과 국가로 인공지능 권력이 집중되는 ‘제국화’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즉, 미래 기술의 핵심 근간이 될 인공지능 주권을 몇몇 대기업과 국가에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소버린 인공지능 내세워 독점 대항하는 EU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최근에는 소버린(Sovereign) 인공지능이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소수 기업과 국가에 기술이 독점되고 일부에게만 이윤이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고 인공지능 기술을 공공을 위해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일명 인공지능의 '민주화'로 개인의 정보와 인권을 보호하고, 투명하게 운영하며,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는 일 등에 방점을 둔다.
대표적인 예가 유럽의회(EU)가 지난 8월부터 실행한 인공지능법이다. 인공지능이 초래할 잠재적인 위험·영향 수준에 따라 인공지능 시스템을 4가지로 분류하고, 그에 따른 규칙과 의무를 제시했다. 금지된 인공지능 시스템(Prohibited AI Systems), 고위험 인공지능 시스템(High-risk AI Systems), 범용 AI(General purpose AI), 제한된 위험 및 최소 위험 인공지능 시스템(Limited Risk and Minimal Risk AI Systems)으로 나뉜다.
이규연 학회장은 “인공지능의 '제국화'냐 '민주화'냐는 간단히 양분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과학적 분석 없이 '제국화'의 시각으로 규제의 칼을 들이대면 인공지능이 발전하지 못할 수 있는 반면, 독점화되고 있는 인공지능을 '민주화'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규제를 소홀히 하면 소수 기업의 독점화와 권력화를 방임하게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