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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진의 옛이야기]동구다리의 귀신 이야기.
능동의 동구다리에 얽힌 옛이야기.
 
향토사학자 김민수   기사입력  2004/10/07 [17:43]

어린이대공원 정문으로 들어서면 잘 꾸며진 연못이 있습니다. 이 연못은 옛날에는 물이 흘러가는 제법 큰 개울이었습니다. 이 개울 맞은 편에 있는 뱀장어골(지금의 화양시장)로 가려면 개울을 가로질러 놓여 있는 동구다리(동구는 마을 어귀를 뜻함)를 건너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동구다리에는 아름다운 여자 귀신이 기다리고 있다가 밤늦게 술에 취해서 건너오는 남정네들에게 술상을 받아주고 골탕을 먹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들은 대로 다시 꾸며 보려고 합니다.

▲어린이 대공원 정문 바로 안쪽의 연못. 동구다리는 이 연못의 물이 흘러내리는 어린이 대공원 정문 근처에 있었다고 한다.     © 홍진기

능골에는 서촌과 남촌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두 마을을 가름하는 고개를 신장도 고개(전 능동사무소 남쪽 고개)라고 불렀습니다. 이 고개에는 큰 느티나무가 있었습니다. 이 느티나무를 의지해서 초가집도 한 채가 있었습니다. 홀로된 어머니와 혼기를 한참 넘긴 딸 하여 두 사람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모녀는 부지런하여 꽤 많은 농사를 지었습니다. 또한 어머니는 농사일이 뜸할 때에는 술도 빚어서 팔았습니다. 여름철에는 느티나무 아래 놓여있는 평상에서 서촌과 남촌 사람들이 고개 바람을 쐬면서 술도 마시고 가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살림은 넉넉한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민거리가 있었습니다. 혼기를 넘긴 딸이었습니다. 나이만이 아니었습니다. 얼굴은 얽은 곰보였습니다. 그런데다가 과부의 딸이니, 지금껏 혼처다운 혼처가 들어오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생각다 못한 어머니는 마음씨가 착하게 보이는 젊은이를 머슴으로 들여놓았습니다. 이러한 젊은이에게 자기 딸을 짝지어 주고 재산까지 모두 물려준다면 얼마나 고마워할까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어머니의 생각은 그저 자기가 죽고 난 다음에도 자기의 딸을 괄시하지 않고 잘 보살펴 주면, 그것으로써 그만이었습니다. 이러한 뜻을 알았는지 젊은이는 열심히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살림은 점점 불어났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기력은 예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기력이 약해져 가는 것을 느낀 어머니는 서둘러 혼례를 치렀습니다. 정말로 횡재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이 집의 데릴사위가 된 머슴이었습니다.

 사위가 된 머슴은 장모를 잘 모셨습니다. 아내에게도 자상하였습니다. 전보다 더 열심히 일하여서 모두가 흐뭇해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기력은 날이 갈수록 약해졌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서 거동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 해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장모가 돌아가신 다음부터 사위의 태도는 훽 달라졌습니다. 아예 일할 생각은 하지도 않았습니다. 동구다리를 건너가서 뱀장어골의 주막에서 온종일 살다시피 하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의 아내는 힘든 일을 모두 맡아서 해내야 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술값을 내주지 않으면 아내에게 손찌검까지 하였습니다.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동구다리를 지날 때에는 흥겨운 노랫가락을 흥얼거렸습니다. 내가 언제 머슴살이를 했었느냐는 듯이 거드름을 피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남편은 한량들의 흉내를 내면서 하루 하루를 보냈습니다.

 억척 같이 일하는 그의 아내는 그럭저럭 남편의 술값을 대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뱀장어골을 넘어서서 두모포(중랑천과 한강이 만나는 포구)까지 가서 놀기 시작하였습니다. 한양에서 제일 큰 포구였습니다. 그곳에는 기방(기생이 있는 술집)들도 많았습니다. 아내의 조그마한 벌이를 가지고 그렇게 노는 남편의 술값을 대주기란 턱없이 부족한 것이었습니다. 그때마다 남편은 행패를 부렸습니다. 간혹 장독들이 깨지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견디다 못한 아내는 돈을 꾸어서 남편에게 주었습니다. 이내 아내는 빚쟁이가 되어 갔습니다.

 남편은 기방만 드나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투전판에 끼어 들었습니다. 노름 밑천으로 들어간 돈은 금새 모든 것을 앗아갔습니다. 농사짓던 논과 밭들이 모두 빚에 넘어가고만 것입니다. 그의 아내는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넋 잃은 사람처럼 느티나무 아래서 동구다리 쪽을 멍하니 쳐다보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었습니다. 투전판의 왈자패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보기만 하여도 무시무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내일 당장 집을 비우라는 것이었습니다. 너의 남편도 노름빚에 잡혀 있는데, 어디로 팔려갈지 알 수 없다는 말까지 하였습니다. 아내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조용히 문을 닫고 거울 앞에 앉았습니다. 그렇게 긴 밤을 보냈습니다.

▲신장도고개는 지금의 어린이대공원주차장에서 구 능동사무소로 들어가는 삼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예전에는 꽤 높은 고개였으나 주거환경사업으로 고개가 낮아졌다고 한다. 사진은 옛 신장도고개의 현재 모습     ©홍진기

 이른 아침, 신장도 고개에는 서촌과 남촌의 두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금새 느티나무 둥지를 에워쌌습니다. 그 가운데의 평상 위에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이 반듯이 누워 있었습니다. 느티나무 가지에 걸려있는 하얀 끈이 없었더라면, 아마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았을 것입니다. 젊은 아내는 그렇게 목을 메고 짧은 생을 마쳤습니다. 어머니와 행복하게 살았던 신장도 고개를 살아 생전에 떠나고 싶지 않았었나 봅니다.

 그러한 일이 있고 난 후부터 능골에는 이상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습니다. 이슬비가 내리는 밤에 신장도 고개를 넘어가려면 느티나무 가지에 목을 멘 여인을 꼭 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장도 고개 길은 저녁만 되면 인적이 끊겼습니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깊은 밤에 술에 취해서 동구다리를 건너려면, 아리따운 여인이 술상을 들고 막아선다는 것이었습니다. 술상을 받으시라는 여인의 권유를 받고 밤새껏 즐긴다고 합니다. 여인을 희롱하면서 놀고 있으면 어느덧 날이 샌다고 합니다. 날이 밝아오면 자기는 동구다리 밑 개울가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능골에서는 술을 마시며 방탕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더욱이 투전판에 발을 들여놓는 사람은 아예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능동 토박이들에게 전해 오는 이야기로 광진구의 향토사학자인 김민수 선생이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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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10/07 [17:43]   ⓒ 디지털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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